엘 콘데 데 토레필 ‹호수의 빛› La Luz de un Lago
“퍼포먼스 보러 오실래요?”라고 가끔 그가 물으면 무조건 간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칼렌더 속 이미 자리 잡고 있었던 일정을 조용히 드래그해서 다른 날로 옮긴다. 어떤 퍼포먼스냐는 질문은 굳이 하지 않는다. 보나 마나 좋을 테니깐.
냉기 품은 쿰쿰한 극장의 냄새를 맡으며 곧 시작할 퍼포먼스를 기대하는 설렘이 좋다. 들고 나는 숨을 통해 몸의 긴장을 덜어내고 의자 깊숙이 몸을 묻는다. 하우스 조명이 꺼지며 모든 소음이 일제히 멈추는 순간, 마법처럼 깨어날 내 몸의 어떤 감각을 기다린다. 무대 위, 그 어떤 격동의 이야기가 진행될지라도 객석에 앉은 나는, 안전이 보장된 수퍼 파워 관찰자가 된다. 나는 무대와 객석, 두 세계 사이의 괴리가 늘 경이롭다.
국립현대미술관 다원예술 [탐정의 시간] 중, 엘 콘데 데 토레필의 <호수의 빛>이라는 공연을 보고 왔다. 연극이라고는 하나 감각적으로 편집된 한 편의 영화를 본듯하다. 시간적 공간적 배경이 전혀 다른 4개의 단편이 옴니버스처럼 진행되는데, 4편의 이야기 하나하나를 떨어뜨려 놓고 보면 전혀 연결되지 않는 파편 같으나, 극이 진행될수록 전편의 이야기가 다음 편의 이야기 속으로 귀속되며 이어짐을 알 수 있다.

첫번째 이야기. 1995년, 맨체스터의 Massive Attack 공연에서 만난 두 남녀.관능을 뺀 삶은 죽음이지 않을까 싶은 젊은 육체들, 뿌연 연기, 단순한 반복이 이끄는 절정의 테크노 뮤직, 압도적인 사운드, LSD, 섹스의 황홀경을 온몸으로 경험하는 토마스와 체칠리아의 젊은 사랑이 터질 듯 두근거린다. 축축한 맨체스터의 어느 밤 이들은 기묘할 정도로 강렬한 엑스터시를 경험한다.
이들의 이야기는 두 번째 편인 2012년, 그리스 아테네의 어느 극장 안 스크린 속 영화로 전환되어 이어진다. 매주 수요일 오후 4시 두 남자는 이 극장에서 만나 은밀한 정사를 나누는데, 그날 두 남자의 정사 뒤로 흐르는 영화는 뜨겁게 사랑해서 결혼했으나 차가운 현실의 잔인함을 극복하지 못하고 파국을 맞는 토마스와 체칠리아라는 두 남녀를 그린다.
세 번째 이야기, 2024년 파리의 지하철, 트랜스젠더 마리안이 소설을 읽고 있다. 그녀는 마리안이 되기 이전, 칠레의 대형 어업 회사에 다니던 필립이라는 남자였다. 5년전 사랑하던 할머니의 이름을 빌려 마리안이 되었다. 아테네 어느 극장에서 비밀 정사를 나누다가 발각되어 비참하게 맞아 죽는 게이의 비극을 다룬 소설을 읽으며 그녀는 잠시 세상의 편협함에 허탈해진다. 얻고 싶은 것을 손에 쥐고, 꿈을 이루었지만 결국 모든 것들이 어느 한계에서 허무하게 흩어지는 거 같은 허무함이 그녀를 엄습한다. 그녀는 끝이 없는 바닷속 심연으로 돌아가고 싶다.
이제 네 번째 이야기, 2036년 베니치아 라 페니체 극장. 태평양 한가운데의 탐사선 안에서의 트랜스젠더 해양 생물학자 마리안의 사랑, 갑자기 몰아친 폭풍우, 검게 요동치는 바다로 끌려 들어간 마리안의 이야기가 현대 오페라로 초연되고 있다. 모든 관객이 감동에 빠져든 그 절정의 순간, 극장은 돌연 암전과 함께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진짜 쇼가 시작된다. 액티비스트 ‘BBB 콜렉티브’는 어둠 속에서 당황하는 관객을 향해 수백 리터의 오물을 쏟아붓는다. 극장은 그야말로 지옥과 같은 아수라장이 되며 연출이 아닌 ‘참’, ‘진짜’의 전위예술로 재탄생한다. BBB 콜렉티브는 감동과 탄성을 강요하는 기존의 Wow Art 에 맞선다고 말한다.
<호수의 빛>은 마치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처럼 한 세계의 뚜껑을 열면 또 다른 세계가, 그 다른 세계의 뚜껑을 열면 또 하나의 다른 세계가 끊임없이 이어지는데, 안과 밖이 무한히 이어지는 뫼비우스의 띠 같기도 하고, 꿈에서 소년을 창조했다고 믿는 현실 속 어떤 남자가 본인 또한 누군가에게 꿈꾸어진 가상의 인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는 보르헤스의 소설 ‘원형의 폐허들’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현실이라고 생각했던 어떤 사건이 다른 현실 속의 영화, 소설, 오페라 등의 허구의 형태로 편입되면서 실제와 가상 사이, 경험과 기억 사이, 남자와 여자 사이, 예술과 오물 사이의 이중적 경계가 와해된다. 시대순으로 전개되지만 마치 동시에 존재하는 평행 우주 같다. 그래서일까? 공연 내내 미처 하나를 이해하지 못한채 서둘러 다음 시간 여행으로 떠나야하는 찜찜함과 혼란을 느꼈었던거 같다.
또한, 공연이 시작되자, 하우스 조명이 단칼에 잘리듯 휙 꺼지고, 어둠 속 무대 중앙에 놓인 스크린 위로 빠른 영상이 소음과 함께 재생된다. 앞에서 두 번째 열 중앙에 앉은 내 눈에는 순식간에 3D 공간이 2D 평면으로 전환된 느낌이었다. 빠른 속도로 재생되는 영상은 커다란 픽셀로 산산히 조각이 나 있어 내용도 형태도 분간하기 어렵다. 뭐라도 읽힐까 싶어 뚤어져라 영상을 바라보는데 또 순식간에 무대 조명이 켜지며 공간은 다시 실제의 입체성을 갖는다. 공연 속 장면들은 날이 잘 선 가위로 필름을 싹둑 끊어버리듯 휙휙 바뀌며 전환하곤 하는데, 마치 꿈속에서 맥락없는 시공간을 이리 저리 훌쩍 넘어 순간 이동하는 듯 했다. 그것은, 알랭 레네의 영화 <사랑해 사랑해>(1968) 에서 주인공이 기억을 찾아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떠나지만, 고작 몇 초 밖에 머물지 못하는 과거들의 파편을 몽타주 처럼 보여주는 기법과 유사하다고 생각했다.
퍼포머에 의해 가변적으로 재구성되는 무대 위 스크린들, 강렬한 글리치 영상, 진동하는 사운드, 상상을 증폭하는 텍스트와 설치물, 이 모든 혼돈 속에서 등대와 같은 나래이션, 그리고 3명의 퍼포머들. 이 모든 요소들은 모두 묘할 정도로 동등한 비중을 갖으며 온갖 불안, 혼란, 호기심을 무한히 끌어낸다.
이러한 구조는 공연 내내 미처 하나를 이해하지 못한채 서둘러 다음 시간 여행으로 떠나야하는 찜찜함도 덤으로 선사한다. 어쩌면 공연은 처음부터 ‘이해’를 요구하지 않아보였던거 같기도 하다.
작가가 “그냥 그정도만 감각했으면 그걸로 충분해.” 라고 말하는거 같았고, 나 또한 “그래.. 그렇다면 나는 충분히 즐긴거 같애.”라고 대답하고 싶은 작품.
하지만 며칠동안 나는 그 감각의 잔상에서 부지런히 헤엄을 치다 길을 잃었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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