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실격 / 다자이 오사무
Updated: 4 days ago
주인공 요조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소심한, 아니 병적으로 이 세상을 버거워한다. 남부러울 것 없는 집안에서 똑똑한 머리를 가지고 태어났으나 가벼운 한숨에도 날아갈 듯한 심약한 정신과 이 세상에 속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무능도 함께 지니고 태어났다. 다른 사람들이 평범하거나 혹은 비범하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내는 것을 '보는' 것조차도 그에게는 두려움으로 느껴진다. 삶을 개척하기는 커녕, 자신의 무능과 나약함을 인정하고 살 자신감도 없는 요조는 철저히 자신을 감춘다. 그가 그렇게 선택한 위장술은 '익살'이었다. 엉뚱하고 기발하며 얼핏 보면 자신감이 있어 보일 정도로 다른 사람들의 헛웃음을 유발하는 익살. 사람들은 그 익살의 가면 때문에 그 안에 똬리를 틀고 있는 어둠과 두려움을 보지 못한다.
숨 쉬는 그 자체도 힘든 그에게 세상의 여러 규범, 관습, 다름은 상상을 초월하는 도전들이다. 목숨이 붙어 있기에 어쩔 수 없이 사는 것 뿐이다. 사귀는 여자와 함께 자살을 기도하나 여자는 죽고 혼자만 살아 남아 죄책감까지 이고 지고 산다. 그럼에도 여전히 어두운 내면의 그림자를 익살로 위장한다. 그의 슬립스틱 개그같은 위장술을 알아차린 같은 반 교우의 날카로움에 지옥에 떨어지는 듯한 고통 (쪽팔림)을 느끼기도 한다.
속물 같은 세상과 사람들에게 치를 떨지만, 그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모든 일에 무책임하고, 방탕한 생활을 위한 자금은 모두 여자에게서 충당한다. 늘 돈에 쪼들리면서도 하고 싶은 것은 (술과 방황)은 다 하고 산다. 여자들에게 붙어 살면서... 술에 쩔어 세상을 힐난 하면서도 술에서 깨면 세상 둘도 없는 초라한 남자가 되버린다. 답이 없는 자이다. 지지리 궁상이다.
요조는 순수한 요시코와 결혼을 한다.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일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 친구, 호리키와 집 옥상에서 술을 마시다 아랫방에서 아내 요시코가 거래상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순간을 목격한다. 그 순간 조차도 그는 뛰어들어 성폭행범을 죽일듯 팬다거나, 아내를 구해 낸다거나 하지 않고 그냥 외면한다. 그가 세상이 요구하는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소양이 어떤 것인지 모르는 것이 아니다. 단지, 정말, 죽어도, 그것을 하지 못할 뿐이다. 노력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할 수 없을 뿐이다. 이 사건 이후 그는 커다란 절망과 자책으로 걷잡을 수 없이 붕괴된다. 인간 실격이 되고 만다.
인간 실격 요조.
책을 읽으며 느끼는 불편함은 실상 그의 후짐, 나약함, 느슨함, 초조함, 세상을 향한 비뚤어진 사랑과 지성 등에서 오는 것이 아닌, 묘하게 그와 중첩되는 '나'를 발견하는 일이었다. 요조 안에 내가 있었고, 또 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요조의 위장술이 익살이었다면 누군가는 '선량함'으로, 또 누군가는 '지성'으로, 또 누군가는 '부'라는 위장으로 자신을 감추고 살고 있지 않나라는 생각을 품었다. 동시에, 죽음과 같은 극단적 비극으로 거침 없이 돌진하는 그를 보며 묘한 안도와 위로를 받았다. 마치 요조가 내 대신 세상을 향해 미친 소리를 지르는 것 같고, 내가 하지 못하는 추잡함과 졸렬함을 대신 연기해주는거 같다고나 할까... 나보다 훨씬 못한 인간을 보며 특권처럼 누리는 측은지심이라고나 할까...
원래 우리는 어쩌면 미세한 숨결에도 흔들리는 깃털 같은 존재였을지 모른다. 사실, 그래도 좋았을 세상이었는데, 어느 자비롭지 못한 자들이 튼튼한 종자만 살아 남도록 설계한 후 연약한 것들은 스스로 소멸되도록 하지 않았나 라고 생각해본다.
요조처럼 인간실격의 레벨로 망가질 자신이 없는 나는 오늘도 열심히 살고 있다. 열심히 사는 것만이 인간의 품위라고 믿는 평범한(?) 사람들이나 세상을 포기한 요조같은 사람이나 우주의 시선에선 고작 모래 알갱이일 뿐인데, 우리가 뭐라고 서로를 판단할 수 있겠는가.
세상. 저도 그럭저럭 그것을 희미하게 알게 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세상이란 개인과 개인 간의 투쟁이고 일시적인 투쟁이며 그때만 이기면 된다. 노예조차도 노예다운 비굴한 보복을 하는 법이다. 그러니깐 인간은 오로지 그 자리에서 한판 승부에 모든 것을 걸지 않는다면 살아남을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럴싸한 대의명분 비슷한 것을 늘어놓지만, 노력의 목표는 언제나 개인. 개인을 넘어 또다시 개인. 세상의 난해함은 개인의 난해함. 대양은 세상이 아니라 개인이라며 세상이라는 넓은 바다의 환영에 겁먹는 데서 다소 해방되어 예전 만큼 이것저것 한도 끝도 없이 신경 쓰는 일은 그만두고, 말하자면 필요에 따라 얼마간은 뻔뻔스럽게 행동할 줄 알게 된 것입니다. (p96)
저는 점차 세상을 조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 (중략)도시락 통에 먹다 남긴 밥알 세 알. 천만 명이 하루에 세 알씩만 남겨도 쌀 몇 섬이 없어지는 셈이라든가 혹은 천만 명이 하루에 휴지 한 장 절약하기를 실천하면 펄프가 얼마만큼 절약된다는 따위의 ‘과학적 통계’ 때문에 제가 지금까지 얼마나 위협을 느꼈는지. 밥알 한 알 남길 때마다 또 코플 풀 때마다 산더미 같은 쌀과 산더미 같은 펄프를 낭비하는 듯한 착각 때문에 얼마나 괴로워하고 큰 죄를 짓는 것처럼 어두운 마음을 가져야만 했는지.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과학의 거짓’, ‘통계의 거짓’, ‘수학의 거짓’ 입니다.
세상의 온갖 괴로움을 감당하지 못한 요조는 결국 마약에 중독되고 가족에 의해 정신병동에 감금되었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고향의 어느 작은 마을로 보내어지며 한 늙은 식모가 그를 돌본다.
수면제를 한 움큼 집어 먹고 잠들려 했으나 잠은 오지 않고 설사만 내리한 요조는 결국 그것이 식모가 잘못 사온 헤모노틴이란 설사약임을 알고 실소를 짓는다. 끝까지 인생은 코미디 같고 그를 비웃는듯 하다.
지금 저에게는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모든 것은 지나간다. 지금까지 제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소위 ‘인간’의 세계에서 단 한 가지 진리처럼 느껴지는 것은 이것 뿐입니다.모든 것은 그저 지나갈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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