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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의 민들레 / 강신재

  • Writer: Mimi Son
    Mimi Son
  • 2 hours ago
  • 7 min read

단편인 줄 알고 펼쳐들었다. 그래서 한숨에 읽으려고 박차를 가했는데 책의 삼분의 일 지점 즈음에서야 장편이라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정말 한 호흡에 책을 몽땅 삼켜버렸다. 모든 인물과 장면이, 처절한 이야기들이 마치 직접 겪은 과거를 회상하듯 선명하게 그려졌다. 영상 이미지를 본 듯 촘촘하고 세밀한 글과 단어들에 경의를 표하며 정독한 책이다. 정말 오랜만에 빨려들듯이.



1950년 6월


우태갑의 가족은 남산의 북동쪽 끝자락, 필동에 위치한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 살고 있다. 50을 훌쩍 넘은 우태갑은 물려받은 재산으로 하인을 여럿 두고 사는 재력가이지만, 타고난 무능과 고집, 허세 등으로 재산을 불리기는 커녕 더 큰 유산을 상속받고 나날이 재산을 증식하는 형에게 억하심정을 품고 있다. 그 특유의 남탓과 피해의식, 되도 않는 낙관은 결국 가족의 피난 기회를 막아섰으며 모두에게 비극을 초래하는 역할로 이어진다.


여느 날과 다르지 않게 시작된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오전, 애인을 만나기 위해서 정성껏 치장을 하고 집을 나선 이화는 서울 거리에서 왠지 다른 무게의 공기를 직감한다. 만남 장소에 나타난 우익 청년이자 이상주의자인 애인 지운은 휴전선이 심각한 상태라며 학교 친구들과 함께 전선으로 가서 도움을 줘야 한다고 떠난다. 다음 날 거리는 부산스럽고 사람들은 피난길을 떠나기 시작한다. 하지만 우태갑은 안심하고 일상을 꾸리라는 대통령의 담화문과 남은 재산도 없는 헛부자이니 자본주의 가족으로 몰려 공산당에게 처형당할 일은 없다는 낙관으로 식구들의 호들갑을 잠식시킨다. 사람들은 이미 정부도 대통령도 모두 도망간 사실을 모르고 금방 끝날 소동쯤으로 여기며 느긋해한다.


결국 한강 다리는 끊어지고 서울은 공산군에게 점령당한다. 피난을 떠나지 못한 우태갑은 그토록 싫어했던 욕심꾸러기 형을 걱정한다. 그는 정말 부자이기 때문에 큰 사단이 날 것이라며 아들 동근을 보내 형의 동태를 파악하려 하는데, 큰아버지 집에 도착한 동근은 이미 큰집 가족들이 모두 비행기를 타고 타국으로 이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지원군으로 나가 교전을 펼친 지운은 무참하게 패배하며 개념적으로 파악하고 있었던 전쟁의 참혹한 실상을 마주한다. 인간을 죽인다는 것에 의미를 두지 않는 개죽음 만도 못한 전쟁이었다. 어찌 살아난 그는 서울의 한 병원에서 숨어 지내며 끓어오르는 복수심을 매일 매일 키운다. 그동안 좌익에 관심을 더러 갖곤 했던 이화는 이로 인해 애인 지운의 우익 이념을 스폰지처럼 빨아들이며 공산당을 증오한다.

우태갑의 아내 심씨는 ‘무지가 곧 죄다’라는 말의 의미를 제대로 보여주는, 그야말로 삶에 대한 대처 능력이 티끌 만큼도 없는 여자이다. 그 무능함과 무지함이 타인에게 해를 가하지는 않으나,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다른 사람들의 삶이 더 수월했을 것이라는 모진 생각이 들 정도이다. 소설의 처음 부터 끝까지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철부지 어머니는 어떤 면에서는 나에게 가장 큰 짜증 유발자 이기도 했다.



첫째 딸 우이화. 소설의 주인공. 빼어난 미모에 지적인 의과대학을 다니는 학생이다. 시대가 요구하는 여성상을 거부하고, 자신이 추구하는 삶을 쫓으며 산다. 그것은 자유, 지성, 심미, 낭만 등이 결합된 모호한 것이긴 하나, 또한 실체가 없는 허구 같으나, 그녀는 그 삶의 존재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않고 삶을 개척하려 한다. 여동생 옥엽의 가족을 위한 희생에 감사할 줄은 아나, 자기의 삶을 사는 것이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우익청년 지운이 떠나고 난 후 충격으로 의무반에 자원하여 처참한 부상병들을 위해 고행하듯 봉사하다가 공산군의 후퇴로 인해 강제로 북으로 이송되는데, 동료 김명식과 함께 기차에서 뛰어내려 탈출에 성공한다. 하지만 임진강의 기슭에서 하염없이 강물을 바라보다가 비행기에서 쏘아대는 총알을 온몸에 맞고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다. 죽기 직전 그녀는 임진강의 반짝이는 물결을 바라보며 이렇게 생각했다.

이화는 기쁨을 참을 수 없는 듯이 강변으로 달려 내려갔다. 소리 내어 쑬렁이며 강물은 흐르고 있었다. 음악이며, 시, 그림 같은 —인간이 그 생활 이외에, 혹은 그 생활 이상으로 사랑하는 것들이, 거기 모두 있었다.…온갖 이렇게 오묘한 것을 사랑하며, 또 사람사람끼리 사랑하며 — 그렇게 살도록 인간도 원래는 만들어졌던 것이 아닐까?

죽기 직전 잠시 의식을 찾은 그녀는 강물에서 노란 민들레가 피었다고 생각하며 눈을 감는다. 작가의 낭만주의가 도드라진 대목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나는 그 전쟁 난리 통에서도 자기의 패션과 스타일을 고수한. 미에 살고 미에 죽을 것 같은 이화만의 독특한 캐릭터가 빛을 발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이화의 의식이 문득 돌아왔다. 몽롱히 분명찮은 삼십 초가량의 호흡이었다. 그녀의 한 손 끝은 물속에 잠겨 있었다. 잔물결이 가만가만 쉬지 않고 출렁였다. 석양을 받으며, 노란 작은 꽃이 한 송이 물에 젖어 있었다. 꽃은 반짝반짝 빛을 반사하였다.’아 민들레가 피었다.’ 하고 이화는 생각했다.그녀는 그것을 만져보로고 하였다. 그리고 그녀의 의식은 다시 끊어져 영원히 되돌아오는 일이 없었다.가을의 들녁에 민들네가 피었을 까닭은 없었다. 그것은 노란 금속의 훈장이었다. 어느 군인인가의 군복 앞가슴을 장식하였을, 그것은 노란 훈장이었다.

둘째 우동근. 아무 생각 없이 사는 부잣집 아들이다. 딱히 악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선하지도 않아보인다. 사유처럼 무거운 것들은 그의 것이 아니다. 그냥 그때 그때 되는 대로 산다. 어느 날은 승마를, 어느 날은 피아노를 하겠다고 하다가 이내 집어치우고는 멀쩡한 한옥 옆에 요상한 양옥을 붙여서 짓는 매우 즉흥적인 사람이다. 그래도 대를 이을 아들이기에 그의 요청은 제법 아버지와 어머니에 의해 다 실현되는 것 같다. 공산당에 의해 마을이 점점 변해갈 무렵 그는 본능처럼 - 고민 없이- 공산당 의용군에 자원한다. 어떤 큰 뜻이 있어서는 아녀 보인다. 하지만 그 일생에서 그가 가족을 위해 한 가장 고결한 결정이 되고 말았다. 그 덕분에 공산당에 끌려간 자본가 아버지는 며칠 내로 풀려났다. 공산당의 의용군으로 참여한 치열한 전투에서 남들이 다 죽어나가는 그 난리통에서 그는 코피조차 나지 않는 천운을 여러번 경험한다. 국국과의 전투에서 패할 기색이 역력하자 동근은 소지했던 북한군의 총을 냅다 던지며 바로 생포되고, 곧이어 다시 국군의 편입해 전쟁에 참여한다. 그에게 있어 이념이란 목숨과 바꾸기에는 턱없이 가볍고 무의미한 것 같다. 어쩌면 이 소설에서 동근이 가장 현명한 사람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동근은 부상으로 죽어가는 이름도 모르고 국적도 다른 소년의 얼굴을 한 중공군을 버리고 갈 수 없어 들쳐매고 도망가다 발 밑에 떨어진 폭탄에 의해 사지가 조각나서 죽고만다. 가족 중 어느 누구도 그의 죽음을 알리 없고, 한 평생 자기 좋을대로 살던 동근은 별안간 발동된 측은지심에 의해 목숨을 잃는다.



셋째 우옥엽, 열 여덟 옥엽은 그야말로 이 집안을 이끄는 유일한 사람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할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닌데도 옥엽은 주술에 걸린 사람처럼 아침 부터 밤나절까지 집안의 모든 대소사를 다 처리한다. 아주 우아하고 말끔하고 현명하게. 우태갑씨네 가족은 물론 하인들까지도 이젠 옥엽 없이는 그 어떤 것도 결정하거나 진행할 수 없을 정도로 그녀의 진두지휘는 조용하지만 단정하고 단호하게 이 가문을 이끌어 가고 있다. 그녀는 이러한 자신의 삶에 그 어떤 감정도 싣지 않는다. 자신의 선택에 충실히 최선을 다할 뿐이다. 대궐 같은 우씨네 집은 곧 괴뢰군들이 쉬며 먹을 수 있는 중요한 거점이 된다. 북한군의 밥을 해먹어야 했던 우씨네 가족들은 죽음과 배고픔은 면했지만 동시에 나라를 배신하는 부역자가 되어 있었다. 그냥 그렇게 되어버렸다. 선택이 아닌 그저 그렇게. 나중에 국군이 다시 서울을 점령하고 북한군이 북으로 후퇴할 때, 옥엽에게 마음을 품은 북한 대위는 그녀를 납치하듯 북으로 데리고 가려 한다. 그간 옥엽에 대한 연정도 이유지만 우씨네 가족이, 특히 옥엽이 부역자로 몰려 국군에 의해 죽임을 당할 것이 자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얼마간 산을 넘어 북으로 끌려가던 옥엽은 어느 지점에서는 탈출을 포기한 듯 보이지만, 도중에 맥락 없이 감정 없이 사람을 죽이는 북한 대위를 보고 탈출을 결심한다.우여곡절 끝에 집에 다다른 옥엽은 이미 잿더미가 된 집 앞에 앉아 넋을 놓고 있다가 저 멀리서 우리 편 국군에게서 끌려오는 여인을 발견한다. 영아 엄마다. 영아 엄마의 남편은 극심한 배고품 때문에 쌀을 훔치다 공산당에게 처형 당했고, 공산당에 대한 분노는 결국 배고픔과 견주기엔 별것이 아니어서, 영아 엄마는 옥엽의 집에서 공산당을 위해 밥을 짓는 일을 하며 영아를 먹여 살렸다. 그러다 결국 전세가 역전되어 우리 편 국군이 돌아왔을 때 그녀는 이미 부역자로 몰려 국군에게 총살당한다. 내 마음이 가장 아팠던 부분이었다.

발부리의 돌 더미뿐이 아니라 긴 치마가 걸리는 때무인지 여자는 몇 번이고 넘어질 듯 휘청거렸다. 그들은 옥엽이 있는 곳까지 다 오지 않고 허물어진 벽 앞에 걸음을 멈추었다. 거기 서서 여인의 눈을 헝겁으로 가렸다. 군인들은 그리고 나서 여남은 발짝 떨어져 가더니 똑같이 총구를 여자에게로 돌렸다. 옥엽은 창백해지며 그곳을 떠났다. 그것은 영아 엄마였다.공산군의 밥을 지어준 영아 엄마는, 또 공산군에게 남편을 살해 당한 그 여자는, 부역의 벌로 현장 근처에서 처형되고 만 것이었다.

넷째 우동훈, 신경질적이고 심약한 막내 동훈은 세상을 품기는 커녕 세상에 존재하는 것 조차 버거워하는 오타쿠 같은 아들이다. 방에 틀어박혀 라디오 같은 전자제품을 조립했다가 분해하기를 반복한다. 있어도 없어도 그만인 넷째, 그래서 누구도 그에게 특정한 기대를 갖지 않는 것 같다. 대신 보호만 한다.



이화의 애인이자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 윤지운. 서울대학교에 다니는 우익 학생이자 이상주의자이다. 인류를 위해서 작게는 이웃을 위해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는 삶은 살고 싶지 않다. 모두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선한 영향력을 발휘해야한다고 믿는다. 지운은 이화의 정신적 지주이자, 애국심이다. 그녀의 미래이자 이상이다. 삶의 이유이자 자유에 대한 근원이다. 그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죽음처럼 처절한 번뇌를 한다. 하루라도 더 빨리 한 명이라도 더 많이 공산당을 죽여 없애야 하건만, 점령되고 고립된 서울에서 그의 신념은 하나 쓸모가 없다. 대의를 위해서 그는 지금 숨어 지내는 이 치욕을 감내해야 한다. 살아야 싸울 수 있기에 그는 이화가 날라다 주는 도시락을 먹으며 철저히 숨어서 하루하루를 지낸다. 그의 지성도 용기도 무용지물이다. 이 무력함이 자아낸 분노를 주체하지 못한 어느 날 이성을 잃은 지운은 도시락을 가져온 이화를 범하려 한다. 그녀의 옷을 찢고 무력을 휘둘러 그녀를 쟁취하려 한다. 이화가 그의 뺨을 후려치자 퍼뜩 정신을 차린다. 그 뒤로 그는 자취를 감춘다. 그 방을 벗어난다는 것은 죽음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던 터라, 그의 사라짐은 곧 죽음으로 해석되었고, 이때 부터 이화는 본인의 삶을 부상병의 치료에 던져 넣는다. 그들이 비록 공산군일지라도.




전쟁은 한 인간이 저도 모르게 품고 있던 극렬함, 한없는 측은지심, 어리석음, 본능 등을 사정없이 까발린다.

동네 반장인 양복점 사장은 전쟁이 시작되자 동네 방네 인공기와 스탈린, 김일성의 초상화를 가져와 조금은 미안하고 소극적인 표정으로 걸기를 요청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양복점 사장은 점점 다른 사람이 된다. 의용군으로 착출될것이 두려워 숨겨둔 아들들과 아버지들이 있을까 싶어 여러 집들을 적극적으로 수색하며 다닌다.

겸손하게, 늘 잔잔한 미소가 고인 듯이 보이던 그의 작은 두 눈은 자신이 내공한, 이상히 집요한 빛을 담고 끈적끈적 이화의 피부를 스쳤다. 그를 ‘열성분자’로 만든 것은 어느 주의가 아니고 권력의 맛이었다. 초라하고 구차스러운 권력의 부스러기, 그러나 그로서는 난생 처음인 힘의 맛일 것이다.

양복점 사장 뿐만 아니라 하인으로 일하던 할범과 그의 아들, 평소 좌익이었던 청년들은 권력과 특권을 부여받으면서 그동안 자기 조차 발견하지 못했던 자신의 다른 면을 꺼내놓는다. 많은 사람들은 이 권력의 이동에 따라 줄을 바꾸며 삶을 이어간다. 그러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래야만 했기 때문이다. 공산당에게 남편을 잃고도 공산당을 위해 밥을 해주던 영아 엄마가 결국 배신의 오명으로 국군에게 처형당하는 걸 보면 도대체 이 안에 선과 악의 구분이란 얼마나 어리석단 말인가. 누가 언제 어떻게 변하게 될 줄 모르는 사람들은 입을 닫고 소통을 끊으며 그들의 안전을 보장한다. 조지 오웰의 <1984>가 떠올랐다.

인민군의 군의군병이나 위생지도원을 이화는 물론 이질의 인간으로 느낄 밖에는 없었지만, 그보다 더 기묘한 감정을 갖게 한 것은 서울 시민인 의사나 의과 학생들이었다.…서로서로에 대한 불산에서 오는 일이었다. 이들의 무거운 치묵과 어색한 무표정은 공산군의 통일된 그것보다 훨씬 복잡한 것이었다. p189


한 인간이 내던져진 어떤 상황 안에서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치는데, 그 방법이 어떻건 간에 그것을 우리는 어떻게 지탄할 수 있단 말인가. 그 안에 어떤 이야기가 있을 줄 알고, 어떤 아픔이 있을 줄 알고 감히 남의 인생을 논할 수 있단 말인가. 더우면 땀이 나고 추우면 소름이 돋는 현상을 탓할 수 없듯이 배고픔과 두려움에 본능처럼 대처하는 인간의 행동에 우리는 어떤 잣대를 들이댈 수 있단 말인가.


왜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가?

왜 우리는 이토록 어리석을까?

왜 세상은 이 어리석음을 반복하는 것일까?


엄밀한 학설이, 다른 하나의 주의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빈틈없이 세워져야만 할 것이리라. 그러나 지금 이화에게는 아무 이치도 설명도 필요치 않았다. 인체에 알맞은 공기, 쾌적한 온도를 본능이 알듯이, 그녀는 그것을 알 수 있었다. 기동적인 공산주의 조직체는 아닌 게 아니라 얼마간의 합리성은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이 사람으로서 번영할 수 있는 바탕이 될 수는 없었다. 그것의 본질을 이화는 심장으로 헤어리고 느꼈다.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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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의 민들레는 작가 강신재가 1962년에 발표한 장편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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